art-culture
아트페어에 패션 디자이너를 앉혔다 — 키아프가 25년 만에 바꾸려는 것

아트페어에 패션 디자이너를 앉혔다 — 키아프가 25년 만에 바꾸려는 것
9월 2일, 서울 코엑스가 다시 미술로 가득 찬다.
25주년을 맞은 키아프 서울(Kiaf SEOUL)과 5번째 에디션을 여는 프리즈 서울(Frieze Seoul)이 같은 날 문을 연다. 키아프에는 18개국 175개 갤러리, 프리즈에는 30개국 125개 이상의 갤러리가 참가한다. 하우저앤워스, 데이비드 즈워너, 화이트 큐브, 페이스, 타데우스 로팍 등 세계 미술시장을 움직이는 갤러리들도 다시 서울을 찾는다.
숫자만 놓고 봐도 큰 행사다. 하지만 올해 키아프에서 더 흥미로운 것은 참가 갤러리의 숫자가 아니다.
25년 만에 처음으로 아트페어의 '경험'을 설계할 사람을 따로 앉혔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은 미술계 인사가 아니라 패션 디자이너 정구호다.
왜 하필 패션 디자이너일까
정구호는 자신의 브랜드 KUHO를 시작으로 패션과 무용, 발레, 오페라를 넘나들며 옷뿐 아니라 무대와 공간을 만들어왔다. 지난 1월에는 그가 연출한 서울시무용단의 <일무>가 뉴욕 무용공연예술상인 베시상(Bessie Awards)을 받기도 했다.

그런 그가 올해 키아프에서 맡은 것은 단순한 공간 장식이 아니다. 전시장 동선과 공간 디자인부터 브랜딩, 특별전 기획까지 아트페어의 전반적인 경험을 총괄한다. 이 대목에서 올해 키아프가 무엇을 바꾸려 하는지가 보인다.
전통적인 아트페어의 구조는 꽤 단순하다. 갤러리마다 나뉜 부스에 작품을 걸고, 관람객은 긴 통로를 따라 걸으며 작품을 본다. 작품은 달라져도 작품을 만나는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정구호가 손대려는 것은 바로 그 방식이다. 관람객이 어디로 들어오고, 어떤 순서로 작품을 만나고, 어디에서 발걸음을 멈추며, 공간을 빠져나갈 때 무엇을 기억하게 될지까지 설계하는 것.
오랫동안 무대를 만들어온 사람이 이번에는 아트페어 전체를 하나의 무대로 만드는 셈이다.
결국 키아프가 바꾸려는 것은 전시장의 모양보다 미술을 경험하는 방식에 가깝다.
작품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졌다
아트페어가 경험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람들이 미술을 발견하는 경로부터 달라졌기 때문이다. 전시장에 가기 전 이미 SNS에서 작품을 보고, 작가를 검색하고, 전시 공간 자체를 콘텐츠로 소비한다. 작품 하나만큼이나 그것을 어디서, 어떤 맥락으로, 어떻게 만났는지가 기억에 남는다.
키아프가 준비한 'Kiaf SEOUL 2026 HIGHLIGHTS'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읽힌다.

2023년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아트페어에서 주목할 만한 작가들을 선별해 소개해왔다. 지난해 젊은 작가들의 가능성에 주목했다면, 올해는 오랜 시간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구축해온 중진작가 10인을 다시 바라본다.
올해 키워드는 '공존(共存)'이다.
새로운 것만 빠르게 좇는 대신 이미 오랜 시간 작업을 이어온 작가들의 작품성과 정체성, 그리고 그들이 축적해온 시간까지 함께 바라보겠다는 것이다.
아트페어가 당장 잘 팔리는 작품만 보여주는 장터라면 굳이 이런 프로그램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아트페어에는 거래 이상의 역할이 요구된다.
어떤 작가를 다시 발견하게 할 것인지, 어떤 이야기를 남길 것인지, 그리고 관람객이 그 미술과 어떤 관계를 맺게 할 것인지.
미술을 파는 장소에서 미술을 발견하게 만드는 장소로, 아트페어의 역할이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
프리즈 서울도 새로운 미술을 꺼내놓는다
변화는 키아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올해 프리즈 서울에는 현대미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살펴보는 '머티리얼 프랙티스(Material Practice)',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어온 20세기 작가들을 다시 조명하는 '스포트라이트(Spotlight)'가 새롭게 등장한다.
아시아의 신진 갤러리 16곳을 모은 '포커스(Focus)' 역시 새로운 구성으로 관람객을 만난다.
유명 작가와 대형 갤러리만 앞세우기보다 지금까지 충분히 보이지 않았던 작가와 갤러리를 발견할 이유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키아프와 프리즈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비슷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미술을 발견하게 될까.

그리고 그 질문의 중심에 서울이 있다
이런 실험이 서울에서 벌어지는 이유도 있다.
지난해 키아프에는 약 8만 2천 명, 프리즈 서울에는 약 7만 명이 방문했다. 160개가 넘는 해외 미술관과 기관 관계자들도 서울을 찾았다.
거래도 이어졌다. 마크 브래드포드의 회화는 450만 달러, 한화 약 62억 원에 판매되며 프리즈 서울 출범 이후 최고가 거래를 기록했고, 김환기의 <구름과 달>을 비롯한 한국 작가들의 작품도 국내외 컬렉터들의 관심을 받았다.
글로벌 미술시장의 침체 속에서도 서울에서는 고가 작품에만 거래가 몰리지 않았다. 중저가 작품까지 비교적 고른 거래가 이어졌고 새로운 컬렉터들의 유입도 눈에 띄었다.
서울이 더 이상 해외 갤러리들이 잠시 들르는 아시아의 한 도시가 아니라, 작품과 작가, 갤러리와 컬렉터가 실제로 만나는 시장으로 변하고 있다는 신호다.
그래서 25주년을 맞은 키아프의 변화는 꽤 상징적이다. 시장이 커질수록 더 많은 작품을 가져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작품을 어떤 맥락에서 보여주고, 새로운 관객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가 중요해진다.
서울이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요한 무대가 되었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그 무대를 채우는 방식이다.

보는 사람에서, 참여하는 사람으로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더 생긴다. 미술을 보여주는 방식이 이렇게 다양해지고 있다면, 우리가 미술에 참여하는 방식은 여전히 '관람'과 '구매'뿐이어야 할까.
누군가는 작품을 사고, 누군가는 전시를 찾는다. 누군가는 좋아하는 작가의 계정을 팔로우하고 작품을 공유한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이 가능성을 발견한 예술과 콘텐츠에 직접 참여하는 방식도 등장하고 있다.
예투(YEATU)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좋은 작품과 콘텐츠가 세상에 나오기 위해서는 창작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제작비가 필요하고, 공간이 필요하고, 그것이 완성될 때까지 가능성을 믿어주는 사람도 필요하다.
예투는 미술을 비롯해 공연, 영화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와 투자자를 연결해 좋은 프로젝트가 실제로 만들어질 수 있는 기반을 넓혀가고 있다.
그 대상이 이미 이름이 알려진 작가나 거대한 프로젝트일 필요도 없다. 아직 많은 사람에게 발견되지 않은 아티스트와 콘텐츠에도 참여할 수 있고, 콘텐츠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소액으로 자신이 발견한 가능성을 응원하며 그 성장 과정에 함께할 수 있다.
아트페어에서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 오래 머무는 것과 그 작품이 계속 만들어질 수 있도록 참여하는 것은 전혀 다른 행동처럼 보인다. 하지만 출발점은 같다.
'이 작품이 계속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미술과 관계 맺는 방법은 계속 늘어난다
올해 키아프가 정구호에게 맡긴 것은 결국 예쁜 전시장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관람객이 미술을 만나는 과정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Kiaf HIGHLIGHTS가 오랜 시간 작업해온 작가를 다시 발견하게 하고, 프리즈가 새로운 세대의 갤러리와 저평가된 작가들을 꺼내놓는 것 역시 같은 흐름 안에 있다.
미술시장이 성숙한다는 것은 비싼 작품이 더 많이 팔린다는 뜻만은 아닐 것이다. 더 많은 작가가 발견되고, 더 다양한 관객이 들어오고, 그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예술과 오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시장이 되는 것.
오는 9월 코엑스에서는 수많은 작품이 새로운 관객을 기다린다. 누군가는 그 앞을 지나가고, 누군가는 멈춰 서고, 누군가는 처음 보는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가능성에 직접 참여할 수도 있다.
미술을 만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그렇다면 미술과 함께하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예투는 그 다음 선택지를 만들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