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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향기 IV 정종한 개인전

천년의 향기 IV 정종한 개인전

예투
천년의 향기 IV 정종한 개인전
 

칠하고 기다리며, 나는 바다를 그린다

정종한 개인전 《천년의 향기 IV》

2025.07.23 – 07.28 | 인사아트센터 제5전시실

 
출처: 성승건 기자
출처: 성승건 기자

“할머니는 매일 아침, 자개농을 닦았다. 나는 그 옆에 누워 은빛인지, 파란빛인지 모를 자개의 빛을 바라보았다.” 정종한 작가의 그림은 그 기억에서 시작되었다. 한때 통영의 부와 전통을 상징했던 자개장은, 아파트 시대가 되면서 잊혀져 갔다.

그는 어느 날 버려진 자개장을 주워 집으로 가져왔다. 그때 마음속에 스친 질문 하나. “우리 문화가 사라지는 걸 지켜만 봐도 되는 걸까?”

그날 이후, 작가는 옻칠과 자개만을 재료로 20년 넘게 작업해왔다. 칠하고 말리고, 또 칠하고 기다리는 고된 반복. 자개 한 조각을 인두로 지지는 미세한 시간 속에서, 그는 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새겨 넣는다.

 

천 년을 기다린 색, 손으로 번역하다

《천년의 향기 IV》는 제목 그대로, 옻칠의 ‘변하지 않는 색’을 주제로 한 연작이다. 이번 전시는 서울 인사동에서 열리는 23번째 개인전으로, 작가는 약 40점의 평면 작업을 통해 시간, 기억, 바다, 그리고 전통에 대한 단단한 화답을 건넨다.

그의 그림은 회화지만, 공예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 옻칠은 쉽게 다룰 수 없는 재료다. 온도와 습도에 따라 마르지 않기도 하고, 한 겹을 입히는 데 수십 번의 얇은 칠이 필요하다. 게다가 자개를 붙이기 위해서는 손으로 자르고, 그 위를 아교로 덮고, 다시 열을 가해 녹여내야 한다. 이 고된 수작업 끝에 나타나는 화면은 단순한 ‘재료미’가 아니라 오랜 시간을 버티며 쌓아온 장인의 세계다.

 

바다, 달, 그리고 순수의 상징

정종한 작가의 그림에는 늘 바다가 있다. 그는 통영에서 자라 바다를 기억하고, 지금은 마산만이 보이는 언덕 위의 작업실에서 바다를 그린다. 그 바다는 고래가 떠다니고, 달항아리가 뜨고, 물고기 떼가 유영하는 ‘동경의 풍경’이자 ‘어린 날의 순수’다.

그는 말한다. “그림은 결국 내가 즐거워야 오래 갈 수 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바다를 그리고 있더라. 그건 내 곁을 떠난 적이 없는 것이니까.”

 

전통을 지키는 방식은 다양해야 한다

정종한 작가는 서양화를 전공했다. 하지만 그는 어느 순간 서양화의 재료 대신, 우리의 재료를 쓰기로 결심했다. 그는 버려진 자개장을 보고, 작업실 한 켠에 그 문짝을 세워두었다.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그의 작업실은 옛날 집이다. 친구의 어머니가 살던 마산의 빈 집을 손수 고쳐 천장을 뜯고, 자개를 바닥에 박고, 휴게실을 전시장처럼 꾸몄다. 그곳은 그에게 단순한 작업 공간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 현재의 노동, 그리고 미래의 꿈이 공존하는 장소다.

 

예투가 주목한 이유

정종한 작가의 작업은 우리가 이야기하는 ‘예술의 가치’와 깊게 맞닿아 있다. 재료가 전통이면 표현은 현대적이다. 작업은 반복되지만 매번 달라진다. 그 모든 과정은 시간을 버티는 일이고, 감각을 새로이 하는 일이다.

그는 말한다. “이제야 바다의 맛을 조금 알 것 같다. 마산만을 배경으로, 돝섬과 무학산이 보이는 풍경을 언젠가 그리고 싶다.” 그의 그림은 옻과 자개로 만들어졌지만, 그 위에는 ‘기억’과 ‘고향’, 그리고 ‘지켜야 할 무언가’가 담겨 있다.

 

전시 정보

정종한 개인전 《천년의 향기 IV》

2025.07.23(Wed) – 07.28(Mon)

서울 인사아트센터 제5전시실 5F

03164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길 41

 

에디터 A’s Note

이 시대에 ‘옻칠과 자개로만 그림을 그린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린다면, 당신은 아직 정종한을 보지 못한 것이다. 이 전시는 전통을 ‘박제’가 아닌 ‘회화’로 되살린, 가장 손끝 가까운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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